답답할 정도로 말수가 적다. 겸손하고 수줍음 타는 성격 탓인 듯하다.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무술 자랑보다 파벌로 얼룩진 무술계를 한탄했을 뿐이었다. “장기 한 가지만 들려달라”고 강권(?)하자 그제야 자신을 소개했다.
당수도 9단인 김창호 대한당수도협회장(65)은 계면쩍은 듯 “몇 초 안에 기를 불어넣어 공격할 수 있고 주먹 하나로 7∼8가지의 기술을 구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한번에 3∼4차례 가격할 수 있다. 웬만한 상대는 한 번 타격으로 쓰러뜨릴 수 있다”며 다소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당수도는 일제시대 독립운동 때 빛을 본 한국 고유의 무술로 32개형과 1,800가지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내외공을 겸비하고 있어 청소년들에게 좋은 무술이다”고 설명했다.
전북 김제 출신인 김회장은 어릴 때부터 무술에 푹 빠졌고 최고수가 되기 위해 여러 도장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어떤 무술도 성에 차지 않았다. 이럴 때 만난 인물이 당수도의 대부로 알려진 당산스님이다. 당시 우이동 화계사를 찾았을 때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고 이후 50여년간 ‘당수도 외길’을 걷었다.
22세 때 부평에 당수도체육관을 세운 그는 다소 독특한 훈련을 시작했다. 소나무 가지를 잡고 한번에 꼭대기까지 뛰어오른다거나 3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며 담력을 길렀다. 벽을 타고 세 발짝 이상 뛰어가는 연습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한창때는 도사견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려 두개골에 금을 냈고 건설회사를 운영하던 선배를 괴롭힌 건달 30여명과 겨뤘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싸움실력을 과시했다. 스피드면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수준이었다.
김회장의 무술실력은 날로 늘어갔지만 당수도의 운명은 하향곡선이었다. 국가에서 인정한 태권도 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고 재정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김회장은 당수도를 보급하기 위해 자재를 털어 성남에서 4년간(87∼91년) 200평 규모의 무료 체육관을 운영했는데 3,000명 이상이 몰려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사글세를 살면서도 “돈만 모이면 무료 체육관을 운영하고 싶다”는 그는 “애초에 돈을 생각했다면 무도인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당수도를 위해 살아왔고 한평생을 바친 것에 후회는 없다”고 밝혔다.
[스포츠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