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력은 특이하다. 11세 때 처음 운동을 시작해 25년 후 태권도 6단에 올랐다. 하지만 30대 후반 ‘마이웨이’를 외치며 또 다른 길을 택했다. 바로 태껸이다. 전통무예에 완전히 매료된 그는 20년간 태껸의 전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고 마침내 최고의 경지인 9단에 등극했다.
이용복 총사(55)가 그 주인공. 대한태껸협회 상임부회장이자 재단법인 세계태껸본부 이사장인 이총사는 기자를 만나자 “맨몸 무술이 상생의 지혜임을 깨달았다”며 알 듯 말 듯한 말로 첫인사를 건넸다.
당초 그의 꿈은 최고의 격투가. 친형들이 유도와 프로레슬링을 배우는 집안 분위기 탓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무술을 접한 가운데 처음에는 당수에 입문했다.
19세되던 해인 67년 국제태권도연맹이 주최하는 국제사범교육에서 3개월간 청강하면서 커다란 감명을 받았고 부산 대신동 구봉산 중턱에 도장을 차리면서 본격적인 수련에 돌입했다.
주위 건달들과 넝마주이패들이 위협을 해오기도 했지만 이들을 간단히 제압,그 일대를 평정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나무 뛰어넘기와 발차기,정권단련 등에 주력했는데 얼마나 이를 물고 했던지 지금도 주먹을 움켜쥘 수는 있지만 잘 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70년대 일본 가라테와 교류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어릴 때 배웠던 당수도와 다를 게 없었다. 신앙처럼 여긴 당수에 실망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태껸. 태껸의 최고수 송덕기 선생(87년 작고)을 직접 찾아가 사사했고,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제압하는 것을 보고 ‘바로 이것이다’며 무릎을 쳤다. 일격필사가 전부가 아니라 부드러움의 미학을 깨달았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낯선 ‘태껸도장’을 보고 50여명의 고수들이 한번 겨뤄보자며 도전해왔을 정도였다. 국내에서만 50여만명이 태껸을 배웠다는 그는 “태껸은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제압하는 무술이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장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총사는 “기본이 튼실하면 모든 동작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무예 택견’(89년) ‘위험할 때 호루라기 세 번’(92년) ‘빛깔 있는 책들 택견’(95년) ‘택견연구’(95년)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해온 그는 실전과 이론을 겸비한 진정한 고수임에 분명하다.
[스포츠투데이] 최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