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소림사 등 중국 무협영화를 보면서 한번쯤 무술인의 길을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학교 다닐 때는 태권도장을 기웃거리며 격파술 등에 매료됐던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최근 이종격투기 바람이 불면서 무술에 대한 관심이 다시 한번 높아지고 있다. 이에 스투는 매주 국내 최고수를 찾아 그들의 흥미진진한 인생얘기를 소개한다.
‘합기도의 달인’을 찾아나선 때는 가랑비가 촉촉히 내리던 7일 오후.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지하체육관에 들어서자 160㎝ 될까말까한 자그마한 체구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왜소한 그가 마중을 나왔다. 기자가 앉자마자 그는 섬광 같은 눈빛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난 3초면 충분해”라며 말문을 열었다.
서인선(61). 한민족합기도무술협회와 세계기도무술협회 총재를 맡고 있는 합기도계의 대부다. 공인 10단으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는 기자가 대뜸 “얼마나 대단했느냐”고 묻자 이내 전설적인 ‘무협스토리’를 풀어놓았다.
지금까지 그의 발과 주먹에 나가떨어진 사람은 자그마치 2,000여명. 지난 57년 대구상고 재학시절 처음 합기도(당시 야와라로 불렸음)에 입문한 이후 40여년 동안 국내외에서 수천번의 대련 또는 싸움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지지 않을 정도로 실전무술의 최고수다. 그의 발과 손은 허공을 가르는 ‘검(劍)’에 비유됐고,상대의 공격을 막은 후 0.1초의 스피드로 급소를 가격하는 몸놀림은 ‘번개’에 버금갔다.
그는 연습벌레였다. 군 제대 후 65년 체육관을 연 그는 이후 6년간 매일 6시간씩 발차기,특히 돌려차기에 매진했고 매일 100여명의 중·고생을 상대로 대련했는데 당시 무릎이 패일 정도였다고. 천하를 평정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술연마에 혼신을 쏟았고 손바닥 군살이 5㎝나 돋았을 정도로 피땀을 흘린 결과 70년대에는 당대 최고수로 인정받았다.
그는 결코 상처를 남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화 하나. 70년대 초 불량배 4명의 머리를 평수(손바닥으로 공격하는 기술)로 제압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들이 신고하는 바람에 경찰서로 연행됐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진단서가 나오지 않았던 것. 불량배들은 분명 머리를 맞았지만 아무런 상처가 없었고 대신 옆구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런 표정만 짓고 있었다. 머리로부터의 충격이 옆구리까지 전달됐지만 아무런 외상을 찾지 못했고 결국 그는 환한 웃음을 지은 채 풀려났다.
그의 두둑한 배짱도 유명하다. 60년대 말 경남 진주에서 개관한 제자의 체육관에 다른 무술의 관장을 비롯한 무리들이 ‘텃세’를 부린다는 연락을 받고 그는 서울에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는 150여명이 돌과 병을 들고 몰려든 상황에서도 ‘3초면 끝나니까 물러가라’고 큰소리치며 원만한 타협을 이끌어냈다.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에 불려가서도 누구와 붙어도 ‘3초면 끝날 테니’ 아무나 불러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는 태권도 복싱 레슬링 유도 가라테 등 온갖 무술의 고수들을 상대로 실전을 치렀고,그 결과 모든 무술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수천가지의 호신술을 터득했다는 그는 “어떠한 상대라도 약점은 반드시 있다”고 못박았다.
자그마한 체구지만 팔씨름도 당할 자가 없다. 80년대 이후 미국에 체육관을 열면서 작은 체구 때문에 멸시를 받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2m에 가까운 거구들을 팔씨름으로 코를 납작하게 했다. 물론 싸움을 걸어오면 즉시 제압했지만 팔씨름이 더 위력을 발휘했다고. 그는 “총재인 내가 지면 조직은 무너진다. 어떠한 대결에서도 반드시 이긴다는 것이 내 신조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40년간 국내외 27만명의 제자를 길러냈다는 그는 “합기도는 상대가 잡았을 때 관절이나 혈을 제압하는 호신술이 뛰어나고 단전호흡에 의한 힘의 집중을 키울 수 있는 무술이다”고 자랑하면서 2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스포츠투데이] 최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