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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 2003~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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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란 무엇일까?

태권도는 발로 찬다는 의미를 가진 태(跆)와 주먹으로 막고 지른다는 뜻을 가진 권(拳), 그리고 길과 방법을 뜻하는 도(道)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즉 태권도란 단어의 순수한 의미에서 발로 차고, 주먹으로 막고 지르는 일정한 기술의 체계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실제로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태권도 역시 맨손과 맨발로 수행하는 전신운동으로서 인체의 특정부위와 관절을 단련하여 자신을 방어하고, 타인을 공격하는 기술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볼 때 태권도수련은 신체를 단련하여 강하게 만드는 과정이자 동시에 신체의 폭력가능성을 높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도덕성은 대학교수나 교사, 성직자 등과 같이 폭력 사용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인격적 자질로 보인다. 조직폭력배나 거리의 깡패와 같이 폭력 사용을 업으로 삼고 있는 자들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신체의 폭력가능성을 높여주는 태권도와 폭력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도덕성은 겉보기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태권도 도장이나 훈련장 또는 경기장 등을 방문해 보면 태권도 수련이나 경기를 전후해서 지도자나 상대 선수에 대해 정중한 예의를 표하는 광경이나, 도덕과 질서를 강조하는 정신교육 장면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경향은 광복 이후 태권도의 진흥에 힘썼던 도장들의 이름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도관(智道館), 무덕관(武德館), 강덕원(講德院), 송무관(松武館) 등의 초창기 도장의 명칭에는 지혜(智), 도(道), 덕(德) 등과 같은 윤리적 덕목에다가 민족의 기개를 상징하는 소나무(松)까지 곁들어 있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태권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도덕성을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태권도는 여러 가지 인간을 이롭게 하는 측면을 다양하게 내포하고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폭력으로 남용될 소지가 많은 행위양식이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각 개인이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수련하는 과정에서 건강과 자신감, 극기와 절제 등과 같은 바람직한 가치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기능을 갖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과정에서 몸을 폭력수단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 기능을 갖는다.

이 두 가지 기능이 적절하게 조화되는 경우 태권도는 그 자체의 타당성을 갖게 되지만 태권도의 부정적 기능이 긍정적 기능보다 우선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미국이나 유럽사회에서 개인간의 갈등상황에 태권도기술을 사용하는 경우 법적인 측면에서 칼이나 총과 같은 무기의 사용과 동일시하여 매우 엄하게 처벌하고 있는데, 이 점은 바로 태권도의 역기능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역기능에 대한 보완적 수단으로서 태권도수련에 앞서 도덕성을 강조해야만 한다.

이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자동차운전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운전기술을 배우기에 앞서 먼저 교통법규준수의 내면화과정, 즉 교통도덕교육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자동차운전은 분명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매우 유용한 면을 많이 갖고 있다.

그러나 교통법규를 내면화하지 못한 사람이 운전을 할 경우에 그것은 매우 위험하고,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생겨난다.
자동차 운전은 한마디로 사람을 살생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 1톤에 가까운 쇠 덩어리를 시속 100km로 달렸을 경우에 이것과 충돌해서 살아남을 자는 없다. 실제로 우리는 운전미숙이나 취중운전으로 여러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 경우를 신문지상에서 드물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렇듯 운전은 분명 매우 위험한 폭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은 기능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운전면허를 허가해 주는 기관에서는 그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운전기술을 배우기에 앞서 교통법규의 내면화과정, 즉 교통도덕의 습득을 요구하며, 이러한 조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운전을 허락한다. 운전은 삶에 유익한 측면을 많이 제공해 주지만 폭력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높은 기능이기 때문에 오직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 도덕적으로 미성숙한 미성년자나 정신이상자 또는 상습적 음주운전자에게는 운전자격이 부여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예를 군대의 강한 규율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평화시에도 군인들에게는 강한 규율과 절도, 절제력이 요청된다. 그 이유는 이들이 인명을 손쉽게 살상할 수 있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임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군인들이 자신이 소지한 무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사회적으로 커다란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따라서 군인들은 무기를 소지하기 이전에 각종 훈련과정과 정신교육을 통하여 무기를 함부로 남용하지 않도록 철저한 도덕교육을 받는다.

태권도에서 도덕성이 강조되는 이유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어느 정도 신체적 조건만 갖춘 사람이라면 "바른 방법"으로 오랫동안 태권도를 수련했을 경우에 그의 몸은 상대적으로 그 이전보다 강해지고, 빨라진다. 말하자면 그가 발휘할 수 있는 폭력가능성은 크게 증가한다. 이와 같은 강함 또는 폭력가능성의 증가는 수련자에게 건강이라든가 자신감과 같은 유익함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없는 자가 소유했을 때 그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교실에서 동급생들을 협박하거나 구타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고, 거리에서 금품을 갈취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으며, 사소한 말다툼 중에 자신의 의사를 관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될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폭력의 남용은 원칙적으로 법적 제재를 통해 방지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도 있듯이 법이 통용되지 않거나 효력을 미치지 못한 영역이 법치국가 내에서도 분명히 존재한다. 학교운동장의 한 모퉁이나 으슥한 골목, 또는 인적이 드문 공원 등지에서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기 마련이다.

따라서 강함과 폭력에 다름 아닌 태권도 기술을 습득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기술을 익히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억제하고, 인간을 존중하며, 자신이 습득한 기술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내면적 태도, 즉 도덕성을 먼저 길러야만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태권도는 도덕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동양의 전통사회에서도 각종 무술을 전수해 주는 과정과 관련하여 "비인비전(非人非傳)"이란 말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 말은 "인간이 아닌 자에게는 무술의 기술을 전수해 주지 않는다" 는 의미를 가진 한자성어이다. 이 성어 역시 무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무술기술을 습득하기 이전에 먼저 (도덕적으로 성숙한)인간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무도수련, 그것은 폭력의 습득과정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시한 나의 주장에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당신의 설명을 잘 음미해 보면 태권도 수련과정과 도덕성 습득과정은 서로 별개의 과정이라는 주장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잘못되었다.
태권도란 그 자체에 이미 도덕성을 길러주는 도덕교육적 요인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태권도를 수련하다 보면 도덕성 습득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태권도수련과는 별도로 진행되는 도덕교육은 불필요하다."

이와 같은 반론은 한편으로 옳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틀린 반론이다. 선생(사범)을 잘 만났을 때 태권도수련을 통해 도덕성이 길러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옳지만, 태권도수련 그 자체로는 도덕성을 기를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틀린다.

혹자는 때리고, 지르고, 차고, 막는 태권도수련 자체가 제공하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인내심이나 극기심, 단결심, 복종심 등이 도덕성을 길러주는 근거로 작용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요인들은 도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나 도덕성 자체의 구성적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조직폭력배집단 구성원이나 깡패에게도 이러한 능력은 똑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로 차고, 손으로 막고 지르는 태권도 자체의 수련과정과는 별도로 사범의 의도적인 도덕교육이 필요하다.

글/송형석
1962년 충북 증평 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및 동대학원 졸업
독일쾰른체육대학 박사(철학 및 교육학 전공)
현) 계명대학교 체육대학 태권도학과 교수

송형석/계명대 태권도학과 교수
[대한태권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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